자관으로 신청
제목: 그 겨울밤을 보내는 방법
부제: 둘 사이의 당연함
<소설 타입> 3천자 시작 + 디저트 (이니셜 옵션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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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이치조는 갑자기 핸드폰에 날아든 문자를 확인하는 중이었다. 방의 전깃불은 꺼져 있었지만 책상 위 스탠드가 켜져 있는 상황이었기에 핸드폰을 찾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잇쨩. 나 지금 잇쨩 집에 갈게.]
직전까지 슬슬 잘 준비를 하려던 참이었던 그는 문자를 다 읽자마자 창밖을 보았다. 상당히 어두웠고 하얀 눈송이가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창문을 조금 열어 보자 제법 두꺼운 파자마를 입고 있었음에도 시린 한기가 느껴졌다. 큰 눈송이가 연거푸 붉은 옷소매 위로 떨어졌다.
그는 즉각 창문을 닫고 전기난로를 끈 뒤 자신의 방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목표는 현관이었다.
그가 현관에 도착하자마자 딩동- 하는 초인종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이치조는 곧장 현관문을 열었다.
“안녕, 잇쨩.”
눈송이들과 함께 훅 들이닥치는 찬 공기 사이로 한 소녀가 서 있었다. 길고 하얀 패딩 코트를 입고 초록색 목도리를 두른 연둣빛 머리칼의 소녀는 이치조의 오랜 소꿉친구 와즈카 사야였다. 그녀의 한 손에는 빨간색 썰매가, 다른 한 손에는 핸드폰이 들려 있었다. 그녀가 바로 문자를 보낸 장본인이었다.
“사야. 여태 썰매를 탄 거야?”
“응.”
사야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현관 안으로 들어와 썰매를 벽에 기대 놓고 신발을 벗었다. 신나게 썰매를 타다가 와서 그런지 조금 헝클어져 있는 머리카락이 그녀를 더 작은 동물처럼 보이게 만들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 좀 재워줘. 놀다 보니 폭설이라서 집에 못 갈 상태가 되었더라고.”
“일단 들어와. 부모님은? 연락해 봤어?”
“응. 괜찮대.”
사야는 이치조의 말에 순순히 대답하며 소꿉친구의 안경 너머로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오래 봐 온 만큼 알 수 있었다. 자신을 걱정하는 따뜻한 눈이었다. 그 눈을 보면 어쩐지 마음이 편해져서, 그녀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의 집에 왔다. 그리고 그녀의 기대는 틀린 적이 없었다.
그대로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이치조의 방으로 들어갔다. 외투를 벗어서 스탠드 옷걸이에 걸어 둔 사야가 이치조의 침대에 걸터앉았다.
“기다려, 우리 부모님한테 이야기해야 하고. 손도 녹이고 있어.”
이치조는 방에 있던 전기난로를 다시 켜서 사야 쪽으로 돌려주었다. 사야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소꿉친구는 10분 정도 뒤에 돌아왔다. 부모님이 허락을 금방 해 주셨을 텐데, 왜 이렇게 늦지 하고 사야가 막 그런 생각을 하던 무렵이었다. 돌아온 이치조의 손에는 머그컵이 놓인 조그만 쟁반이 들려 있었다.
“마셔. 밖에서 오래 놀아서 속까지 추워졌을 거야.”
머그컵 안에는 데운 우유가 가득 들어 있었다. 우유 특유의 고소한 냄새뿐 아니라 희미하게 단 향이 올라오고 있었다. 사야가 우유를 한 모금 머금었을 때 그것은 확신할 수 있는 맛이 되었다.
“설탕, 넣었지?”
“그럼, 물론이지. 듬뿍 넣었어.”
이치조의 끄덕임에 사야는 설탕 넣고 데운 우유를 홀짝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이치조가 물었다.
“저녁은 먹었어?”
“응. 먹고 집을 나섰어.”
“다행이네.”
차분한 대답에 이치조가 조금 웃어 보였다.
“네가 자고 간다고 우리 부모님한테도 말했으니까, 괜찮을 거야.”
“그렇구나.”
이치조는 말을 마치고 옆에 있던 의자에 앉았다. 그렇게 둘은 잠시 함께 난롯불을 쬐고 있었다. 그러다 이치조는 문득 사야의 옷차림을 보았다. 겉에 입었던 하얀 패딩을 벗었더니 그 안에 입고 있던 두껍고 검은 후드 티가 보였다. 확실히 따뜻하긴 하겠지만 외출복이라서 잠들기에는 불편한 차림이었다.
“그러고 보니 너 옷... 그 상태로 잘 건 아니지?”
“에, 그런가.”
사야가 잠시 생각하다가 이치조를 바라보았다.
“잇쨩.”
“응. 내 옷 빌려줄 테니까.”
무언의 부탁에 이치조는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대로 옷장에서 파자마를 한 벌 더 꺼내 사야가 앉은 자리 옆에 놓은 그가 몸을 틀었다.
“갈아입고 불러, 알았지?”
그 이후로 이치조는 얼마 간 제 방문을 닫고 그 앞에 서 있었다. 문 근처 벽에 기대어 잠시 기다리고 있었더니 사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 입었어.”
“알았어, 그러면 들어갈게.”
이치조는 문을 열려고 했으나, 문이 자동으로 움직였다. 아니, 사야가 먼저 문손잡이를 잡고 당겨서 연 것이었다. 활짝 열진 않았지만 너무 조금 열지도 않았다. 딱 이치조가 다시 들어오기에 알맞은 정도로 문이 열렸다.
“너한테는 소매가 조금 길 텐데. 괜찮아?”
“응. 접으면 괜찮을 거 같아.”
이치조의 걱정에 사야가 손으로 소매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그녀는 긴팔 파자마의 소매를 대강 말아올려 입고 있었다.
“그래.”
이치조는 당연한 일처럼 조용히 손을 뻗어서 그 소매를 매만져, 제대로 고쳐 접었다. 한쪽 소매를 먼저 고쳐 접고 반대쪽 소매를 고칠 동안 사야는 자연스럽게 그에게 몸을 기울였다.
“있잖아.”
“응.”
“이 옷, 잇쨩 냄새가 나.”
사야가 이 말을 했을 때쯤 양 손 소매가 모두 깔끔하게 접혔다. 그래서 이치조는 곧장 몸을 물리려고 했지만 그녀의 발언에 멈칫했다.
“...그, 그래서 불편해?”
“아니.”
이치조의 물음에 사야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어느 쪽이냐고 하면 오히려 괜찮다고 생각해.”
그녀는 양쪽으로 묶고 있던 머리를 풀어 내리며 웃었다.
“잇쨩이 있으면 나는 편안하니까. 같이 있는 느낌이 들어서 좋아.”
그녀의 솔직한 대답에 이치조는 묘하게 마음속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어쩐지 편안해진 분위기를 느끼며 그가 말했다.
“그럼 이제 잘래? 너도 오래 논 거 같아서, 피곤할 텐데.”
“응.”
짧은 대화 이후 둘은 서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곧 이치조가 이불을 치웠다. 침대에 누운 그는 머리맡에 안경을 두었다. 안경을 벗고 나니 시야가 온통 뿌옇게 보였다. 그러고 나자 침대 한쪽으로 무언가의 무게가 더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흐릿한 시야로도 알 수 있었다. 사야였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꼬물꼬물 움직여 이치조의 가슴팍 근처까지 다가갔다. 이치조는 무의식적으로 슬쩍 그녀를 안아 주려다가 잊어버린 것을 떠올렸다.
“아... 잠시만. 기다려, 불 꺼야지.”
이치조는 급히 다시 안경을 집어 들고 상체를 일으켰다. 안경을 쓰고 침대를 나가려는데 허리에 묵직한 무게가 매달려서 그의 행동을 가로막는 것이 느껴졌다.
“사야?”
“...”
침대에 걸터앉은 채 말없이 그의 허리를 꽉 끌어안은 사야를 바라보던 그는 부드럽게 웃었다.
“사야, 불을 켜고 잘 수는 없잖아.”
“...”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그의 허리를 감싼 팔에 조금 더 힘이 들어간 것이 느껴졌다. 이윽고 그의 몸에 기대는 감촉이 느껴졌다. 그 이후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잇쨩.”
“응. 나 여기 있어.”
“...응. 잘 자.”
그녀의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알았어.”
그제야 슬그머니 무게가 멀어졌다. 이치조는 조심조심 자리에서 일어나, 스탠드 불을 끈 뒤, 다시 자리에 누웠다. 안경을 벗어놓고 이불을 덮자마자 다시 그의 가슴팍 근처에 인기척이 나타났다.
“잘 자, 사야.”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다시 그의 허리를 꼭 끌어안는 팔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오늘 밤은 따뜻하게 잠들 것 같네. 이치조는 조용히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가 수마에 몸을 맡길 때쯤에는 조금 더 먼저 잠이 든 조용한 숨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디저트>
안녕하세요, 신청자님!
너무 귀여운 페어가 들어와서 정말 좋았어요. 자료 읽으면 읽을수록 너무 귀여운 거 있죠. 챙겨주는 오빠 + 그런 오빠가 있어서 내심 좋은 여동생 같은 느낌... 게다가 서로 없으면 큰일 나는 사이라는 게 정말 좋았어요.
이들의 관계에는 당연함이 전제가 되는 거 같더라고요. 어린 시절부터 계속 같이 있었기에 일상에서 함께 겪어 온 수많은 기억들과 정보들이 있어서 서로가 점점 더 편해지고 당연해지는 느낌 참 좋았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뭔가 둘 사이에 있는 그 ‘당연함’을 묘사하고 싶었습니다.
그 느낌을 주신 플롯에 그대로 담아 봤는데요. 집에 가기 어려워졌을 때 갈 곳으로 떠올린 게 당연하다는 듯 이치조의 집인 사야라거나, 사야를 챙겨주는 게 일상을 넘어 당연한 전제가 되어 버린 이치조라거나... 재워줘, 한 상황 그 이후로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상상하는 게 참 흥미로웠습니다. 자료를 참고해도 / 제 생각에도 그냥 뭔가 자연스럽게 같이 잘 거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애정 가득하고 순애지만 연애하는 커플스러운 분위기는 내지 않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말보다 다양한 행동으로 꽉 채워 담아 보았습니다. 이들에게는 서로가 옆에 있을 만큼 편하고 소중하다는 감각도 당연함의 일부이기 때문에 사랑한다고 입 밖에 일부러 꺼내 놓지도 않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치조가 여러 모로 챙겨주는 거나, 사야가 거의 말없이 스킨십을 하는 마지막 장면 등으로 녹여 보았어요. (이 점에는 사야가 말을 딱딱하게 해도 표현이 서투른 거지, 그렇다고 너무 무감정한 로봇처럼만 보이는 거 역시 NG라고 생각했다는 사실도 있습니다.)
그리고 신청자님이 작업물에 꼭 넣어주길 바라셨던 핵심 장면, 사야가 이치조의 옷을 입고 잇쨩 냄새가 난다고 말하는 장면에서도 “잇쨩이 있으면 나는 편안하니까. 같이 있는 느낌이 들어서 좋아.” 하는 대사로 살짝 제 감상을 넣어 봤습니다.
사실 대사를 쓸 때 캐릭터 설정에서 ISFJ와 ISTP의 이야기라는 점을 참고해서 생각해 봤는데요. 둘의 성격 포인트를 최대한 보여주려고 했어요. 둘의 성격이 맞물리는 부분이 이 둘의 맛있는 포인트이기 때문이죠. 이치조한테는 ISFJ 특유의 안정을 좋아하고 남을 돌보는데 그 와중에 체계적이기도 한 모습을 넣으려고 노력했고, ISTP의 특징 중에 자기가 편안하게 느끼는 사람만이 친구다. 가까운 사람에게만 허물없이 대한다. 필요한 말만 한다. 마음에 없는 말은 안 한다. 같은 걸 조합해서 사야의 대사는 하나하나 매우 신중하게 배치해야 했습니다. 진심으로 이치조를 편하게 여기고 좋아하고 있다. 하는 느낌을 내려고 노력했고, 이치조가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면서도 말이 지나치게 길어져서 어색해지지 않게 하려고 신경을 썼습니다. (사야는 이치조와 오래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ISFJ 성격인 그에게는 최대한 명확하게 설명하는 게 좋다는 걸 알고 있을 거 같았어요. 하지만 동시에 이치조는 사야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너무 다 전달하려고 하면 사야의 캐릭터성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미 이치조가 아는 것을 아니 그런 것들은 굳이 언급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는 말입니다.)
끝으로, 글 분위기 잡을 때 자료 중에 있었던 같이 자고 있는 이치조와 사야를 계속 보면서 작업했습니다. 덩치 차 나는 페어 좋아요. 상냥한 보호자 캐릭터랑 그 상냥함을 서툴게나마 감사해하는 캐릭터의 합이 좋아요. 너무 귀여워서 좋았어요. 지금 다시 봐도 귀엽네요. 대체 귀엽다는 말을 몇 번 쓴 건지 모를 만큼 귀여워요. 앞으로도 이 매력둥이 둘이 사이좋게 잘 살았으면 좋겠네요. 정말 설탕 넣고 데운 우유 같은 따뜻하고 몽글몽글한 페어인 만큼 이 페어의 멋짐을 아낌없이 담아보려 노력했답니다. 지금 생각하니 계속해서 여러 가지 느낌이 올라오는 게 마치 자꾸 떠올리게 되는 달콤함을 가진 거 같기도 하네요.
신청 감사했습니다. 귀여운 페어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날 되세요. :)
한글 기준 본문 (공포) 3513자, 디저트 194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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