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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늘은 크리스마스 쿠키를 만들었다

부제: 물론 부재료로는 애정과 믿음을 듬뿍 담아서

 

<소설 타입> 4천자 + 디저트 (이니셜 옵션 O)

 

--

 

지금 이치조는 한 손으로는 사야의 손을 꼭 잡고 있었고, 다른 한 손으로는 장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오늘은 둘이서 크리스마스 쿠키를 만들기로 한 날이었다. 본래라면 썰매를 같이 타거나 눈으로 하는 놀이를 즐겼을 두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았기에 자연스럽게 일정이 그렇게 되었다. 사야는 단 것을 좋아했고, 이치조는 그 단 것을 챙겨줄 만큼 상냥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단 것을 먹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사야가 아니었다.

, 재료를 거의 다 모았다. 이제 밀가루만 사면 돼.”

, 밀가루.”

두 사람은 죽이 잘 맞았다. 주변에 있는 마트 직원들도 그런 그들에게 익숙해서, 오늘도 저 애들은 사이가 좋구나 하고 웃고 있었다. 레시피를 외워 온 이치조는 사야를 자연스럽게 이끌었다.

“...여기 있어.”

.”

이치조는 사야가 집은 밀가루를 보고 잠시 멈칫했다. 그러다가 그는 가볍게 웃으며 장바구니를 내려놓고 밀가루를 받아들었다.

사야. 그러고 보니 너희 집에 쿠키랑 같이 먹을 코코아가 떨어진 거 같던데. 가져올 수 있을까? 난 이거 챙기고 있을게.”

“....”

그리고 사야가 자리를 뜨자, 이치조는 빠르게 제 손에 들린 중력분과 선반 위에 진열된 박력분을 슬그머니 바꿔치기했다.

가져왔어.”

잘했어.”

물론 시치미를 떼는 것도 잊지 않았다.

 

*

 

이번 요리 장소는 사야의 집이었다. 사야의 부모님은 지금 외출 중이었지만, 사야가 뭘 해도 너무 위험하지만 않다면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셨다. 그건 사야와 같이 다니는 이치조에게도 어느 정도 해당하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두 사람은 손을 씻고 부엌에 모였다. 이치조가 자연스럽게 찬장에서 체와 주걱, 볼 등을 꺼낼 동안 사야는 테이블에 모인 재료를 들여다보았다. 설탕, 버터, 달걀, 밀가루. 그리고...

코코아... 이 정도면 많이 남아 있는데?”

? 내가 착각했나 보다. 그래도 쿠키에 넣어도 되니까. 괜찮지?”

알았어.”

사야를 납득시킨 이치조는 체를 챙겨들었다.

그럼 난 버터랑 달걀이랑 필요한 만큼 정리하고 있을 테니까, 밀가루를 체에 치고 있어 줄래? 저울 영점은 내가 맞춰 놨어. 여기 적어둔 만큼 하면 돼.”

사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치조가 바구니에 달걀을 쓸 만큼 챙겨 놓은 뒤 버터를 자를 동안, 공기 중에 하얀 연기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아니, 자세히 보니 그건 연기가 아니라 밀가루였다.

콜록! 콜록!”

아이고.”

이치조는 빠르게 상황을 수습했다. 사야의 팔을 살포시 잡아서 멈추게 했다. 그 다음에는 자연스럽게 체를 넘겨받아 본인이 전부 작업을 끝냈다.

“...부엌이 하얗게 됐어.”

. 꼭 우리 동네 같네. 다 끝나고 치우자. 이제 설탕이랑 버터를 섞어 볼까?”

아까 사야에게 변명한 대로라면 코코아 가루도 체를 쳐야 할 텐데, 또 사야에게 맡기면 부엌에 갈색이 추가되지 않을까? 이치조는 잠시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어떻게든 억눌렀다. 내가 하면 되지. 나름의 납득이었다.

내가 필요한 만큼 덜어 줄 테니까, 서걱거리는 소리 안 들릴 때까지 섞는 거야.”

.”

밀가루 소동을 수습하느라 지체한 시간 덕에 버터는 충분히 실온에 풀어져 있었다. 이치조는 미리 따로 챙겨 둔 설탕을 소꿉친구에게 건넸다. 작년 크리스마스 때 사야가 반죽에 설탕 대신 소금을 넣는 실수를 할 뻔했던 것을 잘 알고 있어서 나온 행동이었다.

사야가 그가 정리해 준 대로 설탕과 버터를 섞는 동안 이치조는 급하게 핸드폰으로 쿠키에 코코아를 섞는 레시피를 다시 검색해서 지금 만드는 양에 맞게 계산을 끝냈다. 조용히 코코아 가루를 체에 내리고 있을 무렵, 사야가 다시 이치조를 불렀다.

잇쨩... 나 팔 아파...”

그래? 고생했어. 어디 보자.”

이치조가 확인해 보니 잘 섞였다기보다는 특정 부분에만 몰두해서 섞은 티가 역력했다. 군데군데 녹아들지 않고 남은 설탕이 보였다.

열심히 했네.”

그래도 이 정도면 잘 한 거였다. 칭찬의 의미로 쓰다듬어 주고 싶었지만 양 손이 모두 온통 밀가루 투성이라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이치조는 그 대신 사야에게 흐뭇하게 웃어 준 뒤 다음 작업을 이행하기로 했다.

이제 달걀도 넣어야지.”

.”

지켜보고 있어 봐. 이건 내가 할게. 제대로 되는지 잘 보고 있어야 해?”

사야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 신호 삼아 이치조는 곧장 움직였다. 달걀을 하나씩 톡톡 깨서 넣고, 체로 쳐 둔 가루들도 슬쩍 가져와서 반죽에 합류시켰다. 그러자 아까부터 부엌에 감돌던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가 더 세게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이에 사야가 반죽에 코를 가까이 가져다댔다.

좋은 냄새.”

 

그렇게 만든 반죽을 30분간 휴지시킬 동안, 사야는 집에 있던 쿠키 틀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트리, 천사, 진저브레드, 눈사람, , 별 등등 다양한 모양이 있었다. 그러다가 사야가 이치조를 쳐다보았다.

잇쨩은 어떤 걸로 찍을 거야?”

, 잘 어울리는 걸로.”

지금 그는 오븐을 예열할 세팅을 마친 뒤 달걀흰자와 슈가파우더, 레몬즙을 가지고 씨름하고 있었다. 아이싱을 만들어 볼 생각이었다. 지난번 크리스마스에 만들었던 쿠키는 초코 칩으로 모양을 냈었다면, 올해는 아이싱을 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고른 방법이었다. 사실 그는 그림을 못 그리는 편이었지만 간단한 것 정도라면 괜찮겠지. 사야는 좋아할 거니까. 하고 넘겨짚은 상태였다. , 생각해 보니 색소는 사지 않았는데, 의도하진 않았지만 쿠키가 코코아를 넣어서 짙은 갈색이니 하얀색으로 내버려두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런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계란 흰자에 슈가파우더와 레몬즙을 넣고 섞어, 원하는 농도가 될 때까지 맞춘다.

, 됐다.”

따르릉-!! 그럴 동안 미리 준비한 타이머가 울렸다. 이제 반죽을 꺼내 밀대를 써서 일정한 두께로 밀어야 한다. 이치조가 짤주머니들에 아이싱을 담아 윗부분을 고무줄로 묶을 동안 사야가 밀대를 집어 들었다. 혼자 해보려고 하나, 하고 이치조는 가만히 있었는데, 정작 사야는 그가 행주에 물을 묻혀 짤주머니 위에 올려둘 정도로 시간이 지났을 때까지도 가만히 이치조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래?”

이치조의 물음에 사야는 그의 팔 아래로 몸을 기울여, 품 안에 쏙 들어왔다. 그 상태로 다시 밀대를 잡고, 머리를 기울여서 뒤통수로 가볍게 그의 가슴팍을 쳤다. 이치조는 그녀의 뜻을 바로 알아들었다.

알았어.”

결국 둘은 그대로 함께 밀대를 굴렸다. 그 이후 잘 펼쳐진 반죽 위로 쿠키 틀을 올린다. 시간을 지체했지만 반죽이 아직 많이 물러지지 않아서 모양이 깔끔하게 찍혀 나왔다. 이대로 예쁘게 만들어진 모양들을... 그대로 오븐에 차곡차곡 밀어 넣어 15분 정도 구워 준다. 그러면 기본 쿠키 베이스는 완성되는 셈이었다.

 

오븐이 맡은 일을 마치고 띵! 하는 소리가 울리면 잘 구워진 쿠키들은 이치조가 오븐장갑 끼고 다시 꺼냈다. 그리고 그 위에 아이싱을 올릴 차례가 왔다. 짤주머니 끝을 잘라 각자 하나씩 들고, 살짝 식힌 짙은 갈색 위에 그림을 그려나갔다. 얼마나 작업을 했을까, 진행되는 과정들을 한참 바라보던 사야가 물었다.

잇쨩, 이게 뭐야?”

산타.”

아무리 봐도 비둘기인데. 그럼 이건? 고양이?”

리본이야.”

“...아냐, 이건 흘러내리는 고양이야, 잇쨩. 우리 집 앞에 늘어져 있는 길고양이가 이런 자세로 있어.”

아하하...”

결국 이치조는 쿠키 위에 지그재그로 하얀 선을 거칠게 긋는 정도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러면 못 그리는 게 티가 나지 않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그 옆에서 사야는 열심히 눈꽃을 그리고 있었다. 프로만큼 정교하진 않아도 예쁘다는 소리를 들을 만한 정도였다.

 

그렇게 모든 쿠키가 하얀 옷을 입었다. 아까 레시피를 볼 때 아이싱은 생각보다 굳는 게 느리다는 이야기를 읽었던 걸 기억하고 있던 이치조는 조심스럽게 쿠키를 모아 쟁반 위에 줄지어 놓았다.

잘 굳으면 가족들한테도 나누어 줄 수 있을 거 같아. 잘 됐다.”

“...”

그러다, 사야가 이치조를 쳐다보았다.

?”

우리가 고생했으니까 우리가 제일 먼저 먹어야지.”

사야는 이치조 옆에 딱 붙어 서서 말했다.

코코아 타 줘. 같이 먹게. 아까 쿠키랑 같이 코코아 마시자면서.”

알겠어. 그런데 우선 손을 씻고. 코코아에 밀가루 들어가면 안 되잖아. 그치? 먼저 씻고 기다려. 나도 뒷정리 하고 바로 손 씻고 코코아 타 줄게.”

이치조의 설득에 납득한 사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화장실로 종종걸음을 옮기자, 이치조는 부엌의 상태를 돌아보고 약간 한숨을 쉬었다. 여전히 부엌은 밀가루로 하얬기 때문이다.

서둘러야겠네.”

사야에게 기다리라고 하긴 했지만 너무 기다리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는 청소하는 동안 쿠키에 먼지가 묻지 않게 덮어 두려고 덮개를 찾아보았다. 막 쟁반 위로 덮개를 덮으려던 순간, 그는 한 쿠키를 발견했다.

...”

가슴에 하트를 달고 안경을 쓴 진저브레드 모양 쿠키가 있었다. 안경알 둘 사이에는 작고 긴 점도 찍혀 있다. 그는 이렇게 정교하게 만들 수 없다. 이걸 만든 적도 없다. 분명 사야의 솜씨였다.

하하하!”

이치조는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디저트>

 

안녕하세요, 신청자님! 믿고 재방문 감사드립니다. 여기는 오늘도 귀여운 페어를 다시 만나 기쁜 글백반집입니다.

 

원하시는 플롯을 받았을 때, 생각해 보니 너무 이치조가 다 일을 해 버리면 사야가 요리를 못 하는 귀여움을 제대로 묘사할 수 없고 반대로 사야가 혼자 너무 사고를 치게 마냥 내버려두면 이치조가 제대로 보호자 캐릭터로서 매력 어필을 못 하기 때문에 적당한 조절을 신경 써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최대한 몽글몽글하게 애정을 주고받는 페어를 그리고 싶었어요. 특히 믿음이라는 부분에서요. 기본적으로 둘 다 소꿉친구로 오래 서로를 봐 왔기에 서로가 이런 행동을 할 거야, 어떻게 도와 줄 거야 같은 생각들이 잔뜩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요리를 할 때 사야는 은근히 이치조가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 같은 생각 하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 이 페어 역시 너무 귀여워요.

 

글자수가 적어서 요리는 간단한 쿠키로 준비했습니다. 아마 이 뒤에 둘이 맛있게 함께 먹지 않을까 합니다. 그 즐거운 시간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즐거움 역시 보고 싶으시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 과정을 묘사할 때, 사야도 장난기가 있고 떼 쓸 줄도 아는 캐릭터이긴 하지만, 이성적으로 설득하면 말을 들어주는 타입이라는 것에 집중해서 작업했습니다. 특히 그녀에 대해 잘 아는 이치조라면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또한 이치조가 사야의 젬병 수준인 요리 실력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작년에 뭘 했었는지 같은 걸 생각하게 해서 자연스럽게 그걸 떠올리고 보조를 하게 맞췄습니다. 작년에는 소금하고 설탕을 헷갈릴 뻔했고... 그리고 올해도 사야의 요리 실력은 늘지 않았다는 느낌입니다. 중력분이랑 박력분을 몰라서 아무거나 가져오는 사야... 귀엽네요.

그런데, 아무래도 크리스마스 특별 쿠키라는 그 느낌을 살리려면 아이싱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서 물어봤더니 의외로 이치조가 아이싱을 하면 못 할 거다! 하는 자료가 돌아와서 꽤 놀랐습니다. , 이런 반전 매력 너무 귀여워요. 보호자 캐릭터라고 하면 보통 이것저것 다 잘 하는 만능이라는 대중적인 이미지가 있는 편이고, 지금까지 자료 받은 이치조도 너무 어른스럽고 상냥한 인상에 운동신경도 좋은 편이었던 와중 캐릭터의 약점을 알게 된 거 같아서 재밌었습니다. 게다가 이 와중에 사야는 중상 정도로 잘 할 거라는 게 너무... 너무 귀엽잖아요. 자기는 못 하는데 사야를 생각해서 이렇게 진행하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다면 어땠을까? 하고 그런 장면을 넣어 보았습니다. 그 다음에 사야가 (사실 이치조가 무안할까 봐 감정을 배려한다기보다는 직설적으로 말하는 편이지만) 너무 대놓고 못 만든다고 직언을 하기보다는 이건 다른 거라고 말하는 게 이어지는데, 장난기랑 나름 이치조를 생각하는 마음이 섞이면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야도 이치조가 그림 못 그리는 거 알 듯 싶거든요. 그럼 자신을 위해서 신경썼구나, 하고 생각이 들 테니까요.

... 이건 꼭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막판에 가슴에 하트를 달고 안경을 쓴 진저브레드 모양 쿠키는 사야가 이치조를 생각하면서 만든 게 맞습니다. 말이 적고 표현이 서툴러서, 밀대로 반죽 밀 때도 같이 하자는 말 대신 행동으로 뜻을 알릴 거 같은 아이가, 내심 감사를 전한다면 어떻게 할까? 하다가 저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사소한 귀여움들이 모여, 엄청난 귀여움이 되었습니다.

 

이거 쓸 때 귀엽다는 이야기를 대체 몇 번 했지... 아무튼 이 페어는 귀여운 게 맞아요. 그런 페어가 같이 달달한 거 만든다는 게 귀여운 거 같아요. 정말 좋았습니다.

 

작업 기회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둘이 앞으로도 행복했으면 좋겠네요!

 

한글 기준 본문 (공포) 4369, 디저트 1799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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